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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1. Ttukseom Park

Ep 15. 회고가 너무 하고 싶었던 건에 대하여

by @sangseophwang 2022. 5. 8.

회사 전경. 이 사진을 찍을 날이 올 줄이야!

 

1년. 내가 회고라는 걸 하기 위해 걸렸던 시간이다.

 

처음 개발이라는 분야에 들어와 그동안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회고라는 문화를 접했을 때, ' 취업하면 써야지 ', ' 나는 아직 회고를 쓸 준비가 되지 않았어 ' 라는 생각으로 한참을 참고 참았는데 드디어 내 그동안의 기억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돼서 너무나 행복한 지금이다.

 

그렇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취업에 드디어 성공했다. 그리고 어느새 출근한지 1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1주일간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지난 1년을 준비했고 이제는 지난 1년을 돌아볼 수 있는 권한까지 얻게 됐다. 우선 지금 이 순간의 느낌부터 적어보자면, 겁나 행복하다. 해가 뜰 무렵에 일어나 눈도 못 뜬 채 화장실에 들어가는 기분도, 정면 혹은 휴대폰 화면이 있는 아래만 보며 정해진 방향으로 걷는 출근길에 함께하는 순간도, '편하게 있어라' 는 상사의 말에도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까지 주변 분위기와 바쁨의 정도를 눈치보며 겨우 물어보는 상황도 그 모든 것이 행복할 따름이다. 나도 드디어 이 사회의 공식 인증 부품이 됐다는 사실이 지금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직장인으로써 일하는 것을 조금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인턴으로써 근무했던 회사에서의 6개월간의 경험 때문이었다. 이에 앞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맡은 일에 주도적으로 임하고 기준치를 상회하는 책임감을 가지며 그로 인해 산출되는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이전에 작성한 어떤 글에서 확신의 ENTJ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꽤 들어맞는 타입이기에 이외의 성격은 ENTJ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성격을 갖고 일했던 곳은 내가 주도적으로 일하거나 거기서 오는 보람을 느끼기에는 다소 맞지 않는 곳이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회사라는 이미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나와 직업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일을 해야 잘 맞을까?'
'어떤 일을 했을 때 큰 보람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할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혼란했던 시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무렵 인턴 생활을 마치고 한 달이 넘는 유럽 여행을 가게 됐고, 그 때 이 모든 질문에 답을 정의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진이었다. 1년 전 일본에 리포터 자격으로 참여한 프로그램을 위해 카메라를 사서 취미로 사진을 시작하게 됐는데,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지만 그냥 재미로, 그리고 본능적인 감으로 찍었던 결과물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나도 재능이 있나?' 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 그냥 취미로써만 생각했던 사진이 인턴 생활을 마치고 간 유럽 여행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 가 돼버렸다. 단순한 흥미를 넘어 열정으로 바뀌고, 열정을 넘어 몰입의 단계를 거쳐 직업으로써의 생각까지 이어지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다시 위 질문으로 돌아가 답을 해보자면, 결국은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면 잘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 최대의 일탈 이 시작됐다. 이론도, 인맥도, 배경지식도 그 어느 것 하나 없이 무작정 시작했기에 일단은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었고, 그 때 마침 친구의 추천으로 한 사진 클래스를 수강하게 됐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클래스 강사님과의 연으로 스튜디오에 합류하게 됐다. 어시스턴트와 포토그래퍼 그 어딘가의 포지션으로써 선배 포토그래퍼들의 촬영에 참여해 촬영에 대한 경험을 쌓기도 했고, 일이 끝나면 남은 시간은 성장을 위해 공부하며 그렇게 정식으로 포토그래퍼로써 활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여러 촬영에 참여하며 나름 안정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를 찾는 클라이언트가 많아지고 촬영 스케줄이 점점 늘어나면서 일주일의 8-90%가 사진 업무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매일 촬영하고, 촬영이 끝나면 리터칭을 진행하고, 늘어난 스튜디오 식구들의 조언자 역할도 하고, 다시 촬영을 갈 준비를 하는 사이클이 반복되며, '아.. 이제 좀 쉬고 싶다' 는 배부른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해야할까. 커리어의 절정을 달리던 20년 2월, 그렇게 코로나가 찾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치기어린 생각 이었지만, 처음에는 좋았다. 드디어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밀렸던 드라마도 보고 잠도 푹 자면서 여유를 한껏 즐겼다. 사비를 들여 포트폴리오 촬영도 하며 나름 행복하게 보냈었다. 그렇게 이 시기가 잠깐일 것이라는 오판과 함께 그냥저냥 하루하루를 보내게 됐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수입은 없지만 고정 지출은 그대로, 예상치 못한 가변 지출은 늘면서 점점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이 위기감을 제대로 느끼게 된 순간,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 는 절망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했던 일은 큰 개념으로 보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누군가 찾아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깨지지 않는 악순환의 굴레에 갇혀 쉽지 않은 생활을 이어나가게 됐다. 긱 잡(Gig Job)이라고 불리는 배달도 하고, C사의 계약직 포토그래퍼로 고용돼 수도권 각지를 돌아다니며 가게에 찾아가 음식을 촬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 시기가 참 힘들었던건 분명 나는 스튜디오의 실장으로써 나름 괜찮은 클라이언트들과 걸출한 촬영을 하던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누구한테도 인정받기 어려운 긱 잡을 한다는 사실과 충돌해 인지부조화가 왔던 것이었다. 더욱 슬펐던 것은 이러한 사실을 동료나 주변 사람들에게 터놓고 말하기엔 내 자존심이 너무 강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걸 스스로 감당하며 몇 개월간을 보낸 끝에 더 이상 안되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다시 한 번 나와 직업관에 대해 고민하는 태초의 상태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또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이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일련의 생각이 다시 한 번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단순히 사진이라는 분야에서 확장해 생각하기보다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포토그래퍼로써 회사에 들어가는 것, 학교 전공을 살려 광고/홍보 분야로 재진출하는 것 등등 여러 생각을 해봤지만 그 어느 것도 와닿는 것이 없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내가 아직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은 것 같다.' 는 결론에 도달해 그 때부터 세상의 변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느낀건 코로나 시기에 맞물려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된 지금, 모든 것들이 비대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의 거대한 흐름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 흐름을 주의깊게 지켜보니 앞으로도 이 흐름은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개발(Develop)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평생을 문과로만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컴퓨터 공학, 개발이라는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일도, 계기도 없던 내게 개발이라는 분야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전공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부하면 이 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는 매력, 전문가로써의 삶을 살았던 내게 환경(e.g. 코로나) 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한 명의 전문가로써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능력만큼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이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직장 생활에 대한 편견, 직업관에 맞는 직업 선택에 대한 고민 모두를 날려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시작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쉽다는 말이 있듯, 사진 또한 비전공으로 시작해 인정받는 위치까지 갔으니 개발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결심한 직후, 내게 더 이상 뒤는 없었다.

 

코로나로 한창 시끌벅적하던 21년, 나는 거의 모든 생활반경을 집, 그것도 컴퓨터가 있는 방에서 보내며 개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첫 2달은 내가 개발이라는 분야와 정말 맞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Nomad Coders에서 간단한 프로젝트를 하며 보냈다. 시작해보니 몇 백명의 지원자 가운데 10명 안팎으로 선발되는 우수 졸업생에 2번이나 채택되는 것을 보며, '해볼만 하겠다!' 는 확신이 들었고 끝나자마자 엘리스라는 교육 기관에서 진행하는 AI Track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후의 과정들은 블로그의 여러 글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6개월간의 엘리스 AI Track, 그리고 바로 이어 진행한 1달 반의Wanted Frontend Pre-Onboarding Course, 마지막으로 1달간의 지원 기간을 거쳐 지금의 회사로 올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21년 4월을 기점으로 딱 1년이 되던 올해 4월을 끝으로 취준 생활이 끝난 것이다. 이 기간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일까하고 돌아본다면 역시 지원서를 넣고 수많은 면접을 보던 3-4월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그렇게 힘들다는 취준 경험을 해본 적이 없던 내게 지원서를 넣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던 그 시기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한번씩 찍먹 해본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코딩 테스트에서 떨어지면 이를 복기하며 알고리즘 공부를 하고, 알고리즘 공부를 했더니 면접에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 떨어져 이론 공부를 하고, 이론 공부를 해 임원 면접까지 가면 알 수 없는 이유로 떨어지고. 이런 과정을 겪음과 동시에 공부를 하며 알게 된 지인들의 합격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초조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곤 했다. 불안감은 커져갔지만 그만큼 절실함도 커졌다. 그리고 다행히 그 절실함을 인정받아 지금의 회사로 올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원티드를 통해 넣었던 회사만 100곳에 육박한다. 100번을 도전했고, 100번을 좌절했으며, 그 과정의 끝에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금, 정말 행복하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회사에서 좋아하게 된 일을 한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뭐, 물론 이제 입사한 지 1주밖에 안됐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게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내 커리어, 미래, 성장만을 생각하며 즐기고 싶을 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장난식으로, '나는 문과, 예체능, 이과 모두를 경험한 통합형 인재야' 라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참 나라는 사람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사람들한테, '나 사진할꺼야' 라고 했다가, '나 이제 사진 안하고 개발 해' 라고 하면 그 누구도 이러한 선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접점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한건지 이해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에 작성한 일련의 생각과 경험의 흐름을 이야기하면 다음 질문이 나오곤 한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나도 모르겠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힘든 선택만 쏙쏙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재능인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들은 그만큼 나 자신과 내가 가는 길을 계속 의심하고 테스트하고 에러가 발생하면 수정해 개선하는, 뭐 그런 과정이지 않았나 싶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는 말이 있다. 내 삶도 조금은 삐뚤빼뚤 갈 지언정 올바른 방향을 향해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근데 회고 이렇게 쓰는거 맞는걸까..? 맞겠지 뭐.

 

아무튼 회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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