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림과 맑음이 공존했던 날
# 어제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걸 보면서 오늘 날씨가 왠지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날이었다. 바람이 엄청 불기도 하고 먹구름도 아직 꽤 남아있었지만, 그 구름들 사이로 비 온 다음 날 특유의 진한 파랑의 높은 하늘이 같이 보이면서 청량함이 대비되는 그런 날이었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노마드코더 챌린지와 한바탕 씨름을 한 뒤 남아있던 커피를 들이켜고 장을 보러 나갔다. 마트까지는 거리가 꽤 돼서 보통은 자전거를 타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선선한 바람에 그냥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빠르게 보내는데 이런 시간만큼은 나를 위한 여유를 즐기고 싶기도 했다.
# 높고 푸른 하늘과 생기 넘치는 나무들을 보다 보니 몇 년 전 오키나와에 갔을 때의 풍경이 오버랩됐다.
친구들과 별 계획 없이 가서 첫 날을 보내고 그날 밤 어디를 갈지 알아보다 결정된 동굴 카페. 오키나와 섬의 절반에 해당하는 엄청난 거리를 횡단해야 갈 수 있는 그곳을 어떻게든 가겠다고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렌탈해서 4명이서 하루 종일 달렸었다. 가는 길에 폭우를 만나 패밀리마트에 들어가 비닐봉지를 빌려서 카메라와 휴대폰만 가린 채 비를 맞으며 달리기도 했고, 엄청난 계단을 자전거를 들고 내려가기도 했다. 날도 엄청 더웠고 오르막길도 많아서 한 명씩 쓰러질 정도로 고된 시간이 이어졌었다. 다들 말없이 페달만 밟고 있던 그때 구름이 걷히고 보이던 청량한 하늘은 그동안 쌓여있던 피로도, 스트레스도 전부 잊게 만들었다. 주 목적이었던 동굴 카페는 솔직히 기억에 별로 남지 않았지만 그 때 보았던 푸른 하늘만으로도 그 고생에 충분히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었다. 오늘 하늘도 그 때 그 기분이 살짝 들어서 한 번 적어봤다.
# 이 곳에 이사오기 전에 내가 살던 곳은 수원과 안산 쪽이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쭉 자취 생활을 해오고 있는데, 이 곳에 오며 절실히 느낀 점은 집의 퀄리티만큼이나 집을 둘러싼 주변 환경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원과 안산에 살 때는 비용을 최대한 아끼며 교통편은 좋은 가성비(?) 있는 지역과 집을 선택했는데, 그 곳의 주변 환경은 건물과 상가로 둘러싸인 삭막하고 산만한 분위기였었다. 여유가 필요할 때면 마음을 먹고 멀리 나갔어야했고, 그마저도 에너지를 쓰는 일인지라 포기하곤 했었다. 여유가 필요했지만 여유를 찾을 수 없던 환경에 집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애정도 떨어져갔고 정말 '그냥 사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 곳에 오고 나서 한강이나 공원을 매일 보진 않지만 그럼에도 언제든 나가서 볼 수 있다는, 그런 여유가 생겨서 참 좋다. 이 동네에 언제까지 살진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만큼은 진정한 뚝섬러로써 한강을 맘껏 즐겨야겠다.
# 원래 장 보러 가는 이야기로 글을 꾸미려 했는데, 날이 너무 좋다보니 장 보는 사진을 올리거나 내용을 쓸 공간이 없어졌다. 오늘의 글은 그냥 하늘이 다 한걸로. 그럼 이제 저녁 시간대로 넘어가보자.
# 오늘은 나이키 런 클럽의 기능 중 하나인 '코치 기능'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First Run 이라는 20분 정도 진행하는 회복 러닝 프로그램인데, 시작과 함께 트레이너분의 목소리가 이것저것 러닝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함께 가이드를 해주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 뛰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회복 러닝이라는 점에서 속도를 내지 않아도 좋으니 기분 좋은 상태로 천천히 뛰라고 안내한다. 그러면서 힘을 북돋아 주는 말들도 중간중간에 하는데 정말 나도 모르게 조금 힘내기 시작했다. 특히 마지막에는 전력으로 스퍼트를 했는데, 음악을 들으며 그냥 뛸 때는 하지 못했던 투지 넘치는 러닝(?)을 하기도 했고 정해진 시간까지 무사히 끝냈다는 점에서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종종 이용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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